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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형성

by 금융스토리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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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시초 축적의 조건으로서 자본 관계

마르크스는 이러한 자본의 시초 축적이 가능해지려면 어느 정도의 자본 관계가 이전에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편은 화폐, 생산 수단, 생활 수단의 소유자들인데, 그들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가치액을 타인의 노동력 매입에 의해 증식하기를 갈망한다. 다른 한편은 자유로운 노동자, 자기 자신의 노동력 판매자, 따라서 노동의 판매자들이다. […] 상품 시장의 이와 같은 양극 분화와 함께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 조건들이 주어진다. […] 이른바 시초 축적은 생산자와 생산 수단 사이의 역사적인 분리 과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1권 742/981)

자본의 시초 축적을 위해서는 화폐나 상품이 자본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자본 관계 즉 자본과 임금 노동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면서 노동력을 구입하려는 자본가와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려는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분리는 생산 수단과 생산자의 분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분리가 전제 되어야 자본의 시초 축적이 가능하게 된다. 즉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형성되어야 한다.

시초 축적의 과정들

마르크스는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자세하게 고찰하면서 자본의 시초 축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밝히고 있다.

농민으로부터 토지 수탈

자본의 시초 축적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봉건 영주에 의한 농민의 토지 수탈이다.

오히려 대봉건 영주 자신이 […] 토지에 대한 동일한 봉건적 권리를 지니고 갖고 있었던 농민들을 그 토지로부터 축출함으로써, 그리고 공유지를 횡령함으로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은 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냈다. 이 일에 직접적으로 자극을 준 것은 특히 플랑드르의 양모 매뉴팩처의 번영과 그에 따르는 영국의 양모 가격의 등귀였다. […] 경작지의 목양지 전환. 이것이 그들의 구호로 되었다.(1권 746/986)

봉건 영주들은 양모 산업이 발전하자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경작지를 목양지로 바꾸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동안 경작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을 쫓아내고 그 대신에 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즉 엔클로저(enclosure)를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농민이 토지로부터 축출되어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였다. 그들은 토지라는 생산 수단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제 생계를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프롤레타리아가 된 것이다.

반면에 봉건 영주들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양모를 생산하는 자본가로 변신하였다.

농민으로부터 토지 수탈이 미친 영향

이러한 농민으로부터 토지 수탈은 여러 측면에서 자본주의를 형성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수행된 교회 재산의 약탈, 국유지의 사기적 양도, 공유지의 횡령, 봉건적 및 씨족적 소유의 약탈과 그것의 근대적 사적 소유로의 전환, 이것들은 모두 시초 축적의 목가적 방법이었다.이것들은 자본주의적 농업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으며, 토지를 자본에 결합시켰으며, 도시의 산업을 위해 그것에 필요한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를 공급하게 되었다.(1권 760-1/1007-8)

봉건 영주들이 폭력이나 사기, 횡령 등을 통해 토지로부터 농민을 축출하고 공유지를 사유함으로써 근대적 사적 소유'가 성립하였다. 이것은 자본의 시초 축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렇게 축적된 부는 나중에 노동자를 고용하여 상품을 생산하는 자본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지에서 축출된 농민들은 이제 농업이나 공업 분야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프롤레타리아로 변신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토지나 공장,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하는 시초 축적이 이루어진다.

 

임금 인하를 위한 법령들

자본의 시초 축적의 과정에서는 자본 축적을 가속화하기 위해'임금 인하를 위한 법령'이 제정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폭력적으로 토지를 수탈당하고 추방되어 부랑자로 된 농촌 주민들은 그다음에는 무시무시한 [임금 인하를 위한] 자신의 노동력 판매자 채찍과 낙인과 고문을 받으면서 임금 노동의 제도에 필요한 규율을 얻게 되었다.(1권 765/1013)

농민들은 엔클로저 운동 등으로 토지를 강제적으로 수탈당하면서 거지, 도둑, 부랑자로 전락하였는데, 정부는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피의 입법을 실시하였다. 유랑하는 농민들을 강제로 고향으로 돌려보내거나 아니면 공장으로 보내면서 최소한의 임금만을 받도록 하는 법령을 제정하여 적용했다. 자본주의 초기에 시행된 이러한 임금 인하 법령은 토지나 공장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면서 자본의 시초 축적이 이루어졌다.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의 발생

농민으로부터의 토지 수탈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토지를 임대하는 차지 농업가도 등장하였다.

진정한 차지 농업가(Pachter)는 임금 노동자를 사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본을 증식하며, 잉여 생산물의 일부를 화폐 또는 현물로 지주에게 지대로 지불한다.(1권 771/1021)

농업 분야에서는 차지 농업가(借地農業家, Pachter)가 등장하면서 자본의 시초 축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차지 농업가란 지주에게 땅을 임대한 다음에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여 대규모로 경작함으로써 자본을 증식하는 농업가를 가리킨다.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수탈함으로써 대토지 소유자들이 등장하였지만, 이들이 자본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차지 농업가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윤을 확보하여 자본 증식을 하였다. 따라서 이것을 농업분야의 시초 축적이라고 할 수 있다.